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액션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진행되면서 제가 느낀 건 단순히 주먹질과 칼질만 난무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거였죠. 주인공 인남이 청부살인업을 그만두려는 순간, 과거의 연인 영주와 그녀의 딸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방콕의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과정이 제 심장을 쥐어짜더군요. 특히 방콕 거주 한인 사회와 인신매매 조직이 얽힌 현실적인 설정이 영화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청부살인업을 그만두려던 남자, 과거와 마주하다
인남은 야쿠자 두목 고레다를 제거하는 일을 마지막으로 청부살인업에서 손을 떼려 했습니다. 여기서 청부살인업(contract killing)이란 의뢰인으로부터 금전을 받고 특정 인물을 살해하는 불법 행위를 의미합니다. 인남에게 이 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죠. 너무 오랜 기간 이 일에 몸을 담갔고, 이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인남의 심리를 보면서 공감했던 부분은 그가 단순히 돈 때문에 일을 그만두려 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고레다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가 한국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인남은 그 순간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죠. 국정원 출신이었던 그의 직감이 작동한 겁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국정원(NIS,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으로, 인남은 과거 이곳 소속 요원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소속 부서가 사라지면서 방콕에 남게 됐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 시각 방콕에서는 영주가 딸 유민이를 학교에 보내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영주는 유민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준비 중이었고, 한국인 부동산업자의 도움으로 만족스러운 집을 찾았죠. 하지만 일 때문에 유민이를 직접 챙길 수 없었던 영주는 가정부에게 딸을 맡겼고, 그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가정부는 돈을 받고 유민이를 인신매매 조직에 팔아넘긴 겁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가장 화가 났던 건 방콕 경찰의 안일한 태도였습니다. 영주가 경찰서를 찾아가 딸이 실종됐다고 신고했을 때, 경찰은 "9살짜리가 가출했을 수도 있다"며 48시간을 기다리라고 했죠. 방콕은 유아 인신매매가 횡행하는 도시인데도 말이죠. 2024년 기준 동남아시아 지역의 인신매매 피해자 중 약 30%가 미성년자로 집계됐습니다(출처: 유엔마약범죄사무소). 이런 현실을 경찰이 모를 리 없는데, 그들의 무관심이 영주를 더욱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딸을 찾아 방콕 지하세계로 뛰어든 아버지
인남은 예전 동료 춘성으로부터 영주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처음엔 그녀를 만나길 거부했습니다. 과거 국정원 소속 부서가 해체되면서 인남은 영주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해야 했죠. 당시 인남의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사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인남은 영주의 시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는 단순히 살해된 게 아니라 온몸에 칼날이 박힌 참혹한 상태였죠.
영주의 소지품을 정리하던 인남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에게 딸 유민이가 있었다는 거였죠.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인남의 복잡한 감정이었습니다. 뒤늦게 아버지가 됐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영주는 세상을 떠났고 딸은 실종된 상태였으니까요. 그 순간 인남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유민이를 찾는 것.
인남은 한인 사회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부동산 중개업자를 찾아가 유민이의 행방을 추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남은 가이드 유이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유이는 처음엔 인남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선금과 수수료를 조건으로 협조를 약속했죠. 방콕 사정을 잘 아는 유이 덕분에 인남은 유민이가 잡혀 있던 장소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유민이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진 뒤였습니다. 인남은 한 아이로부터 유민이가 인신매매 조직에 넘겨졌다는 정보를 얻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자들과 충돌하게 됩니다. 제가 인남의 행동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건 그의 거침없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딸을 찾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죠. 인남은 조직원들을 제압하고 마침내 유민이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레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레이는 인남이 처리했던 고레다의 복수를 위해 인남을 쫓는 살인마였죠. 여기서 레이의 행동 패턴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특징을 보입니다. 사이코패스란 감정이입 능력이 결여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폭력을 서슴지 않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의미합니다. 레이는 방콕의 갱단을 혈혈단신으로 쓸어버릴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인남과 레이가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문답무용으로 격돌했습니다. 인남은 레이를 처음엔 자신보다 한 수 아래로 봤지만, 레이의 예상을 넘는 전투력에 위기에 처했죠. 영화에서 이정재와 황정민의 대결 장면은 '신세계'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케미를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제작비 150억 원이 투입된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인 관객 수 350만 명을 넘어 400만 명 이상을 동원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코로나라는 악재가 없었다면 700만 명까지도 가능했을 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한 남자가 뒤늦게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깨닫고 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인남이 유민이를 찾기 위해 방콕의 지하세계를 헤집고 다니는 과정은 그가 과거의 죄책감과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했죠. 영주에게 제대로 된 이별조차 고하지 못했던 인남에게 유민이를 찾는 일은 단순히 딸을 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홍원찬 감독은 '추격자', '황해', '내가 살인범이다' 등에서 각색을 담당했고, '오피스'를 연출한 경험이 있습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박정민 배우의 존재를 포스터와 2차 트레일러에서 감췄다고 밝혔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을 선사하기 위함이었죠. 또한 영화 전체에 'T&O(Teal and Orange)' 스타일의 색감을 의도적으로 적용해 방콕의 습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극대화했습니다.
인남이 딸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신매매 조직, 방콕 갱단, 그리고 자신을 노리는 레이와 동시에 맞서야 했죠.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인남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청부살인업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죠.
결국 이 영화는 한 남자가 과거의 죄책감을 딛고 아버지로 거듭나는 이야기입니다. 인남은 영주와 제대로 된 이별조차 하지 못했지만, 유민이를 찾아 나서면서 비로소 진정한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겪었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족의 의미와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액션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묵직한 드라마를 원한다면, '더 킬러: 죽어도 되는 아이'를 꼭 한번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