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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엔 킬러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기억을 잃는다는 설정이 좀 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이 어이없는 사고 하나로 두 남자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그려지더군요. 프로 킬러 형욱은 일을 마치고 손목에 튄 피를 씻으러 동네 목욕탕에 들렀다가 바닥의 비누를 밟고 넘어져 머리를 크게 부딪힙니다. 같은 시각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던 백수 배우 재성이 우연히 그 목욕탕에 있었고, 형욱의 라커 키를 발견하게 되죠.
재성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호화롭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형욱의 물건을 가져갑니다. 명품 시계와 옷을 입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상을 긁고 다니다가 결국 형욱의 집까지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CCTV로 누군가를 감시하는 화면, 의문의 무기들, 그리고 비밀스러운 자료들. 한편 병원에서 깨어난 형욱은 기억을 잃은 채 구급대원 리나의 도움을 받게 되고, 병원비를 대신 내준 그녀의 부탁으로 분식집 일을 돕게 됩니다.

킬러에서 분식집 알바로
기억을 잃은 형욱이 리나 어머니의 분식집에서 일하는 장면은 솔직히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칼을 잘 다룬다는 이유로 채용된 형욱은 킬러 시절 익힌 칼질 실력을 분식에 그대로 써먹습니다. 떡볶이를 자르고 야채를 손질하는 모습이 마치 작전을 수행하듯 정확하고 빠르더군요. 덕분에 분식집은 순식간에 동네 핫플레이스가 되고 리나 가족의 호감도 급상승합니다.
그런데 형욱의 수첩에 적힌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니 드라마 촬영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재성이 단역 배우로 일하던 곳이었던 거죠. 아무것도 모르는 형욱은 조폭 보스의 보디가드 역할을 맡게 되는데, 여기서 킬러 본능이 발동합니다. 액션 장면에서 보여준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럽고 완벽해서 감독의 눈에 띄게 되고, 단숨에 비중 있는 배역으로 승급하게 되죠. 일부에서는 이 부분이 너무 쉽게 풀린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킬러의 몸에 밴 움직임이 연기로 승화되는 설정이 꽤 설득력 있다고 봤습니다.
신분을 바꾼 두 남자의 운명
형욱 행세를 하던 재성은 집에서 발견한 단서들을 토대로 형욱이 경찰이라고 착각합니다. CCTV로 감시당하는 여자 은주가 증인이고, 형욱은 그녀를 보호하는 경찰이라고 결론 내린 거죠. 재성은 은주를 돕기 시작하고, 매주 목요일 밤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녀의 패턴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은주와 가까워지고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죠.
그러던 중 형욱의 의뢰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재성은 의뢰인과의 접선 장소로 직접 나가보고, 그제야 형욱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됩니다. 경찰이 아닌 킬러였고, 은주가 바로 그의 타깃이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반전은 충격적으로 그려지는데, 이 영화에서는 코미디 요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한편 드라마 촬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형욱은 한 가지 문제에 부딪힙니다. 바로 키스신이었죠. 킬러로 살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 없던 형욱은 애정신에서만큼은 영 어색한 연기를 보입니다. 고민 끝에 리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둘은 연습 키스를 하면서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세 사람 모두 살리는 작전
재성은 은주를 데리고 도망가려 했지만, 회장은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새로운 킬러를 고용합니다. 그리고 그 킬러는 다름 아닌 형욱이었습니다. 여러 가명을 쓰던 형욱에게 네 번째 의뢰가 들어온 건데, 이번엔 재성과 은주 둘 다 제거하라는 내용이었죠.
이 시점에서 형욱은 기억을 되찾습니다. 리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과거의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 모든 게 떠오른 거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형욱은 재성이 꾸며놓은 집안 상태를 보고 상황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재성과 은주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가 진실을 밝힙니다.
여기서 반전이 하나 더 나오는데, 형욱은 사실 진짜 킬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뢰가 들어오면 타깃과 합을 맞춰 죽음을 위장하고 신분을 세탁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던 거죠. 은주 역시 같은 경우였고, 그래서 매주 목요일 밤마다 형욱을 만나 연기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설정이 영화 초반부터 깔려 있던 복선들과 맞물리면서 꽤 괜찮은 반전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형욱은 세 사람 모두 살릴 수 있는 작전을 짜냅니다. 재성이 은주를 죽이는 척, 형욱이 재성을 죽이는 척 연극을 하는 거죠.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리나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위기를 맞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리나가 형욱을 말리려 하자, 형욱은 급하게 작전을 변경해 리나까지 연극에 포함시킵니다. 결국 연극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재성과 은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죠.
이 영화는 2016년에 순 제작비 40억으로 만들어졌는데 69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쳤습니다.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원작의 잔잔한 느낌을 빼고 쉴 새 없이 터지는 코미디 요소를 더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리메이크 영화들은 원작의 색을 살리느라 어정쩡한 경우가 많은데, 럭키는 확실하게 한국식 코미디로 재해석해서 성공한 케이스라고 봅니다.
형욱은 리나에게 모든 진실을 고백하고, 노안에서 벗어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재성 역시 은주와 함께 새 삶을 살게 되고요. 솔직히 마지막 장면에서 형욱이 리나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남자가 킬러든 배우든 결국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소문으로 흥행한 작품인 만큼 재미는 확실하게 보장되니까, 아직 안 보신 분들께는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