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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미생을 처음 봤을 때 '이게 드라마인가, 다큐인가' 싶었습니다. 주인공 장그래가 대기업 인턴으로 첫 출근하는 장면부터 제 과거가 그대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스펙 없이 회사에 들어간 청년이 겪는 냉대와 무시, 그리고 그 속에서도 버티려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는 직장 생활을 미화하거나 극적으로 각색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미생은 그 어떤 작품보다 날것의 회사 생활을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낙하산 인턴의 첫 출근, 투명인간 취급의 시작
장그래는 종합상사 원인터내셔널의 인턴으로 첫 출근을 합니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건 따뜻한 환영이 아니라 "고졸 검정고시가 끝"이라는 차가운 시선이었습니다. 직속 상사인 오상식 과장은 장그래를 낙하산으로 여기며 대놓고 투명인간 취급을 합니다. 복사 한 장 제대로 못 한다고 핀잔을 주고, 업무 지시조차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낙하산 인사'란 실력이나 자격과 무관하게 인맥이나 연줄로 입사한 사람을 의미합니다(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드라마 속 장그래는 성원실업 사장의 추천으로 입사했기에 주변에서 낙하산으로 낙인찍힙니다. 제가 신입사원이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같은 기수 중 한 명이 임원 자녀라는 소문이 돌자, 그 동기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차피 빽 믿고 들어왔잖아"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장그래의 첫 업무는 복사였습니다. 하지만 복사기 사용법조차 몰라 우왕좌왕하고, 결국 다른 인턴 안영이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반면 안영이는 인턴 신분임에도 당당하게 거래처를 설득해 계약을 성사시킵니다. 이 대비되는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이유는, 실제 직장에서도 이런 격차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직장 내 '온보딩(Onboarding)'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온보딩이란 신입사원이 조직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인 교육 및 지원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하지만 장그래에게는 이런 과정이 전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알아서 해"라는 방치만 있었을 뿐입니다.
주요 차별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업무 지시 누락: 장그래에게는 제대로 된 업무 배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음
- 교육 기회 박탈: 다른 인턴들은 선배들에게 실무를 배우지만, 장그래는 소외됨
- 인격적 무시: "26년 동안 뭐 하고 살았냐"는 식의 인신공격성 발언
스펙 없는 청년의 생존 전략, 바둑판에서 배운 끈기
장그래는 어린 시절부터 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며 바둑판 앞에서 10년 이상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입단에 실패하고, 대학도 가지 못한 채 사회에 던져집니다. 그에게 남은 건 바둑에서 배운 '끈기'와 '복기 능력'뿐이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장그래는 매일 밤 자신의 하루를 바둑 노트에 기록합니다. "오늘 왜 졌는지, 어디서 실수했는지"를 분석하듯, 회사에서의 실패도 복기합니다. 이는 '성찰적 학습(Reflective Learning)'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성찰적 학습이란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개선점을 찾아내는 학습 방식으로, 단순 암기보다 훨씬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제가 직접 써본 방법인데, 실제로 신입 시절 업무 일지를 작성하며 하루를 복기하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입사원은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열심히 하되, 왜 그 일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장그래의 생존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 묻지 않고 스스로 찾기: 업무 용어를 모르면 무역 용어 사전을 밤새 외움
- 거절당해도 다시 시도하기: 박 과장에게 수없이 무시당해도 포기하지 않음
-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기: 바이어를 바둑으로 설득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 활용
여기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KPI란 조직이나 개인의 목표 달성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회사는 이를 통해 직원의 성과를 평가합니다(출처: 중소벤처기업부). 장그래는 명확한 KPI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그저 "살아남기"를 목표로 버텨야 했습니다.
직장 내 차별과 편견, 그럼에도 버티는 이유
장그래는 계약직 신분입니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희박하고, 2년 뒤면 회사를 떠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동기들은 하나둘 정규직으로 전환되지만, 그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고졸은 안 된다"는 회사의 불문율이 그를 가로막습니다.
드라마 후반부, 장그래가 준비한 카자흐스탄 사업 아이템이 통과 직전까지 갑니다. 하지만 회사는 "계약직이 사업 책임자가 될 수 없다"며 그를 배제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정말 분노했습니다. 일은 장그래가 다 했는데, 성과는 정규직 선배가 가져가는 구조. 이게 바로 한국 사회의 민낯 아닙니까.
'고용 차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명백한 학력 차별입니다.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는 합리적 이유 없이 학력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학력이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일반적으로 "능력만 있으면 인정받는다"고 말하지만, 제 경험상 능력 이전에 '자격'부터 따지는 회사가 더 많습니다. 장그래는 실적으로 증명했지만, 회사는 그의 '출신'부터 문제 삼았습니다.
그럼에도 장그래가 버틴 이유는 단 하나, "이곳이 우리 회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동기들이 그를 위해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선배들이 인사팀에 그의 공을 어필하는 장면은 드라마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함께라면 가능성이 생긴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미생은 단순한 직장 드라마가 아니라, 대한민국 2030세대의 생존기를 담은 기록물입니다. 저 역시 신입 시절 장그래처럼 "제가 여기 있어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텨낸 이유는, 포기하는 순간 정말 끝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정규직 전환이 안 되셨거나,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분들께 이 드라마를 권합니다.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라는 오상식 차장의 대사처럼,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