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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말모이 (판수와 정환, 조선어학회, 일제강점기)

by 에콩e 2026.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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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월사금 때문에 소매치기까지 하게 된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훔친 가방 안에는 돈이 아니라 우리말 원고가 들어 있었고, 이 우연한 만남이 한글 사전을 만드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이어집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이런 소재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가슴 뭉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제의 조선어 탄압과 조선어학회의 저항

194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은 민족 말살 정책(民族抹殺政策)의 일환으로 전국 모든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폐지했습니다. 여기서 민족 말살 정책이란 한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강제로 없애 정체성 자체를 지우려는 식민 통치 방식을 의미합니다.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고, 우리말로 대화하는 것조차 처벌받던 암울한 시기였죠(출처: 국가기록원).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시경 선생이 사망한 후 중단됐던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을 다시 시작한 거죠. "말과 글이 사라지면 민족 정신도 사라진다"는 믿음으로 목숨을 걸고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울림을 받았는데, 당시 이들이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했는지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한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영화 속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은밀하게 작업을 진행합니다. 원고를 급히 숨기고, 단어를 모으고, 표준어 공청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마치 독립운동처럼 그려지죠.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문화 독립운동이었습니다(출처: 독립기념관). 무기 대신 펜과 원고지를 들고 싸운 셈이니까요.

까막눈 판수와 엘리트 정환의 만남

김판수는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까막눈입니다. 문맹자(文盲者)라는 말이죠. 문맹자란 글자를 전혀 읽거나 쓸 수 없는 사람을 뜻하는데, 당시 조선에는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판수는 아들 월사금을 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소매치기에 손을 대고, 그 과정에서 조선어학회의 류정환을 만나게 됩니다.

류정환은 판수와 정반대입니다. 똑똑하고 운동도 잘하는 엘리트지만, 친일파인 아버지 때문에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죠. 저는 이 둘의 첫 만남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서로 쫓고 쫓기다가 결국 일본 순사들을 피해 함께 도망가는 신세가 되는 모습이 묘하게 운명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정환은 판수가 훔친 가방을 되찾기 위해 월사금 봉투에 적힌 주소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날 밤, 둘은 다시 마주치게 되죠. 이후 판수는 조갑윤의 추천으로 조선어학회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게 되는데, 정환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이 우리말 사전 만드는 곳에서 일한다는 게 못마땅했던 거죠.

하지만 조갑윤은 판수를 믿었습니다. 같은 감옥에서 여러 번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으니까요. 정환은 마지못해 판수에게 한 달의 기회를 줍니다. 그 안에 읽고 쓰는 걸 배우지 못하면 떠나라는 조건이었죠. 저는 이 장면에서 정환의 심정이 이해가 됐습니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까막눈인 사람을 어떻게 믿겠어요? 하지만 동시에 판수의 끈기와 의지도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말모이 작전과 우리말 지키기

판수는 처음엔 글을 몰라 서류 정리조차 제대로 못 합니다. 하지만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배워나가죠. "이게 다 말이죠. 우리나라, 우리 땅, 우리 가족. 이 말과 글이 민족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는 정환의 말을 듣고 판수는 이 일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사투리(방언·方言) 수집이 큰 난관이었습니다. 방언이란 같은 언어 안에서 지역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말을 뜻하는데, 전국 팔도의 사투리를 모두 모으려면 최소 4~5년은 걸릴 상황이었죠. 그때 판수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감옥에서 알게 된 전국 각지 출신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 거죠.

전라도 광주, 경상도 안동, 평안도 등 각 지역 사람들이 모여 자기 고향 말을 알려줍니다. "당이래요", "온냥해요", "고추장을 꼬치장이라 부른다" 등등 생생한 사투리가 쏟아지죠. 저는 이 장면이 정말 좋았는데,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는 메시지가 확실하게 전달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가만히 놔두지 않았습니다. 총독부에서 폐관 명령서가 날아오고, 조선어학회는 마지막 수단으로 '말모이 작전'을 펼칩니다. 잡지에 광고를 실어 전국 각지 사람들에게 자기 지역 말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거죠. 문자 매체를 통한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방식이었던 셈인데, 크라우드소싱이란 불특정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정보나 자료를 모으는 방식을 말합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달랑 한 통의 편지만 왔죠. 설상가상으로 친일 문인 윤철의 고발로 일본 순사들이 들이닥쳐 원고를 모두 압수해 갑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정말 답답했는데, 몇 년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판수와 정환,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싸웠죠. 실제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많은 학자들이 옥고를 치렀고, 이윤재 선생 등은 고문으로 순국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 덕분에 해방 후 우리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를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말모이"는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우리말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입니다. 까막눈 판수가 글을 배우며 민족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 엘리트 정환이 아버지의 친일 행적에 대한 죄책감을 사전 편찬으로 씻어내는 과정이 유머와 감동으로 버무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쓰는 한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지켜진 것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이 영화를 보신다면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한층 깊어질 거라 확신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XtYZ91rH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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